기사제목 [네드 포니 작가] “천사의 소리에 귀 기울여 ‘인류애’ 실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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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드 포니 작가] “천사의 소리에 귀 기울여 ‘인류애’ 실천해야”

원 코리아 리더
기사입력 2019.07.01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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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s.jpg▲ 네드 포니(Ned Forney) 작가
 
6·25, 7·27이란 이 두 숫자가 대한민국 역사에 부여하는 의미는 매우 깊고 무겁다. 한국 전쟁이 발발한 6월 25일과 정전 협정이 체결된 7월 27일은 7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생명력을 이어오며 끝내지 못한 우리의 분단 역사와 양극화 된 이념 대립에 경종을 울린다.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았다. 이 또한 반년만 지나고 나면 6·25전쟁 70주년이란 새로운 기념적 해로 넘어가게 된다. 과거에 발목 잡힌 대한민국이 이 아픔에서 빨리 벗어나 진정한 광복과 번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올바른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다.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우리는 항상 천사와 악마의 속삭임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한국을 사랑한 작가 네드 포니(Ned Forney)는 미국의 남북 전쟁을 이끌고 노예 해방을 이루어 낸 에이브러햄 링컨의 말을 인용해 “더 나은 천사(The Better Angels)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고 했다.

네드 포니는 1950년 12월 23일 펼쳐진 흥남철수작전에서 배의 군수물자를 버리고 1만 4천여 피란민을 구출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에드워드 포니(Edward Forney) 미 해병 대령의 손자이다. 포니 대령은 맥아더 장군과 함께 인천상륙작전을 설계한 핵심 인사로, 장진호전투, 흥남철수작전은 물론 베트남 전쟁에도 참전했다.

베트남전이 아직 진행 중이던 1965년에 50세라는 젊은 일기로 생을 마감한 포니 대령에 대해 손자 네드 포니는 “지금 내 나이가 50세이다. 이 젊은 나이에 전쟁을 겪고 죽음을 맞이했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용감했고 존경스러울 뿐이다.”고 말했다.
인터뷰·사진 허경은


02.jpg▲ 에드워드 포니(Edward Forney) 미 해병 대령과 흥남철수작전 당시 피란민의 모습 (출처= nedforney.com)
 
흥남철수, 군사 작전 아닌 인도주의적 작전

- 할아버지(에드워드 포니 대령)에 관한 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주로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

“흥남철수작전 당시 통역관이던 현봉학 박사와 나의 할아버지인 에드워드 포니 대령 간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이 최종 지휘관을 설득시켜 군수물자 대신 사람을 태워 구출시킨 전반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군사 전략을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인류애 관점(humanitarian operation)으로 썼다. 당시 그 많은 사람들을 태운다는 건 또 다른 사고를 각오해야 하는 위험한 선택이었다. 배가 뒤집힐 수도, 어떤 공격을 받아 침몰할 수도 있었다. 그게 성공했기에 ‘기적’이라고 불리지만, 만약 실패했다면 잘못된 결정으로 기록됐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길을 선택한 건 인류애를 향한 ‘천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덕분이라고 본다. 그래서 책의 제목을 ‘The Better Angels’라고 지었다. 집필 과정에서 그 배에 올랐던 피난민 30명 이상을 인터뷰했다. 당시엔 10대였던 그들이 지금은 80~90세가 되었다. 그들과 개별로 마주앉아 때로는 3시간에 걸쳐 긴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현재는 초고를 마무리한 상태이지만 한국어와 영어로 출간 예정이라 번역과 편집 작업이 진행중이다. 한국 전쟁과 흥남철수작전 70주년인 내년에 맞물려 출간될 것 같다.”

- 집필을 위해 한국에 4년째 체류중인 것으로 안다.

“아내와 함께 체류 중인데 우리 둘 다 한국 생활에 매우 만족하며 지내고 있다. 출간 때까지 앞으로 1년여 간은 더 머물다가 미국으로 돌아갈 것 같은데, 책이 출간되어도 몇 년간은 한국과 미국을 계속 오가지 않을까 싶다. 한국에 있으면서 가장 바쁠 때는 여름과 겨울 시즌이다. 한국 전쟁과 정전 협정일 등이 여름에 있고, 흥남철수작전이 12월에 있기 때문에 여러 곳에서 인터뷰나 초청 행사가 이어진다. 흥남철수 당시 피란민을 태운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거제도에 도착했기 때문에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서는 매년 기념식이 열린다. 올 겨울에도 나는 그 곳에 있을 것 같다.”

흥남철수작전기념비.jpg▲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세워져 있는 흥남철수작전기념비(출처=거제도포로수용소유적공원 홈페이지)
  
4대째 이어진 한국 사랑

- 에드워드 포니 대령은 한국 사람들에게 영웅으로 기억된다. 가정 안에서는 어떤 아버지, 할아버지로 기억되는가.

“사실 할아버지는 내가 3살 때 돌아가셔서 내 기억에는 없지만, 아버지로부터 들은 바로는 그가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다고 했다. 항상 전쟁에 나가있었기 때문에 가족과 함께 한 시간이 거의 없었고 그런 와중에 할머니와 이혼하고 새로운 가정을 꾸리셨으니 좋은 남편이자 아버지는 아니었던 셈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이런 생각을 해 보게 됐다. 보통 전쟁을 치른 군인들은 고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지 않는가. 매일 사람을 죽고 죽이는 현장에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악몽에 시달릴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패밀리 맨(family man)이 되어달라고 기대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사람은 누구도 완벽할 수 없다. 그는 비록 집안에서 좋은 가장은 아니었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한 훌륭한 리더이자 영웅인 것은 틀림없다. 그는 그 길을 택했고 나 또한 할아버지 포니가 아닌 대령 포니를 존경하는 것이다.” 

Chosin-Memorial-Moon-Jae-in-and-Ned-2.jpg▲ 2017년 6월 29일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버지니아주 콴티코 미 해병대 국립박물관을 방문, 장진호 전투 참전용사 후손과의 만남에서 네드 포니와 대화하고 있다. (출처=nedforney.com)
 
- 포니 대령의 한국과의 인연이 각별했을까.

“전쟁이 끝났는데도 한국 주둔을 지원해 2년간(1957~1959) 더 머무르셨다고 들었다. 한국 사람 혹은 한국 해병들과 어떤 깊은 인연이 있었던 게 아닐까. 그는 분명 한국을 사랑하셨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인연이 4대째 이어지고 있으니 더 신기할 뿐이다. 내가 지금 이 곳에 있고, 심지어 내 아들 벤(Ben Forney)은 9년째 한국에 머무르고 있다. 벤은 한국어도 꽤 잘하고 아산정책연구원에서도 일하고 있다. 지금은 잠시 연구활동 차 독일에 머무르고 있는데 곧 돌아올 예정이다. 우리 가족 모두가 한국과 깊게 연결돼 있다. 혹시 할아버지의 한국 사랑이 우리를 이곳으로 이끌어주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소중한 ‘자유’의 가치 지켜내길” 

- 작가가 되기 전에 주로 어떤 활동을 해왔는가. 

“역사 교사로 25년간 근무했다. 지금은 잠시 교단에서 내려와 전업 작가로 글을 쓰고 있지만, 작가와 교사라는 두 직업을 모두 사랑하기에 언젠가는 교사로서의 역할을 또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미국에서 줄곧 있다가 이집트에서 2년, 두바이에서 1년, 그리고 중국에서 3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 다음 국가가 한국이 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작가로서 한국 역사와 관련한 에세이, 기사 등을 주로 써 왔는데 할아버지에 관한 책을 출간한 후에도 한국 역사나 한국과 미국 간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    

- 직접 머무르며 느낀 한국 사회는 어떤 곳인가.

“한국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정말 언빌리버블(unbelievable)한 나라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지구상에서 보면 정말 너무도 작은 나라이다. 그리고 민주주의 역사 기준으로 보면 아주 젊은 국가임에도 그 시스템이 잘 돌아가고 있다. 미국 곳곳에 삼성 휴대폰, 엘지 냉장고, 현대 자동차가 없는 곳이 없다. 아무 것도 없이 출발해서 이런 발전을 이뤘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2.jpg▲ 네드 포니(Ned Forney)가 청소년을 대상으로 장진호 전투와 한미 우호 관계의 중요성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출처=nedforney.com)
 
작가이자 교사로서 한국 청년들에게 메시지를 전한다면.

"일부 청년 세대들은 6·25나 흥남철수작전 등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그들이 지켜낸 자유의 소중함이 무엇인지 모른 채 오로지 취업과 경제 문제에 대해서만 고민하며 살아간다. 나는 중국에 3년, 이어 한국에 4년째 있었기에 두 국가의 차이를 체감한 게 많다. 한국인들은 커피숍에 앉아 쉽게 지도자나 정치를 비판하지만 중국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한국 신문은 정치 문제를 보도해 독자들에게 논쟁 거리를 던져주지만 이 또한 중국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이 차이는 ‘자유’가 있는가, 그리고 ‘민주주의’ 국가인가의 차이다. 너무 자유로운 세상에 살고 있다 보니 그 가치를 못 느끼며 살고 있지만, 잃어버린 후에는 그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게 될 것이다. 아직 분단이 끝나지 않은 나라에서 살아가는 청년 세대들은 이런 자유의 가치와 분단의 역사를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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